느긋하다. 조급함이 없다. 미온적인 정부와 시큰둥한 양봉농가들의 불만이 범벅이 됐다.

벌꿀등급제를 둘러싼 현 상황이다. 시간은 촉박하고 갈 길은 먼데 제자리걸음이다. 벌꿀등급제 본 사업 시행 후 한 달여 만에 벌써부터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 달라질 리 없다”는 말들이 나온다. 

짐작컨대 벌꿀등급제가 시범사업으로 10여 년간 시간만 흘려보내며, 제도 안착에 필요충분조건인 인프라는 구축하지 않고 쫓기듯 시행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겉만 본 사업이지 속은 시범사업과 차이가 없다. 

양봉업계의 말마따나 지난 시범사업 때처럼 되풀이된다면, 벌꿀등급제에 참여할 양봉농가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벌꿀등급제를 탈바꿈할 수 있는 ‘의무화’가 필요한 이유다. 이제 막 벌꿀등급제 본 사업이 시행된 시점에서, 의무화는 섣부른 주장일 수 있다. 걷지도 못하는데 뛰라는 말이다. 

사실 벌꿀등급제 의무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일단 벌꿀등급제를 시행하는 국가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국내 양봉산업의 정확한 통계, 사회적 합의 등이 선행돼야 한다. 또 의무화에 따른 규제 신설은 되려 양봉농가들의 반발도 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꿀등급제 의무화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벌꿀등급제는 가짜꿀 논란에서 소비자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2029년부터 관세가 완전히 철폐된 값싼 베트남산 꿀을 상대로 검증받은 품질을 무기 삼아 경쟁할 수 있다. 베트남산 꿀을 비롯해 외국산 꿀들이 국내 벌꿀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벌꿀등급제, 더 나아가 ‘의무화’는 양봉산업 생존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물론 벌꿀등급제가 의무화로 가기까지 여러 난관에 부딪히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어쩌면 벌꿀등급제 자체가 유야무야 종료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와 양봉업계가 뜻을 모아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면 벌꿀등급제 의무화와 더불어 경쟁력을 갖춘 국내산 벌꿀이 외국산 꿀들에게 자리를 내줄리 없다고 확신한다. 

벌꿀 수입개방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 이대로의 벌꿀등급제는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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