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협중앙회가 퇴직 임원에 대한 예우 규정으로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 중 불거진 중앙회장의 퇴직공로금(퇴직금) 11억1800만원이 공개되면서 치렀던 곤혹스러움을 또 다시 치루고 있는 것이다.

농협중앙회는 퇴임한 최원병 회장에게 2016년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 가량 운전기사와 차량 지원 등으로 매달 700여만원 씩 모두 3500만원을 지원해, ‘도덕 불감증’·‘제왕적 기득권’의 집착이라고 지적받은 바 있다.

 

각계에서 비난 빗발

 

이번 예우규정의 내용은 이렇다. 중앙회 이사회가 퇴직한 중앙회 임원들을 고문이나 강사 등으로 초빙해 사례금을 지급하던 관행 등을 정비하기 위해 새롭게 기준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중앙회장이 퇴직한 이후에도 2년 간 차량과 기사를 제공하는 동시에 매월 500만원을 지급하며, 2년 연장이 가능하게 했다.

이 규정은 전임 회장들에게는 해당되지 않고 김병원 회장부터 적용한다. 또 중앙회 전무이사와 상호금융대표에게도 퇴임 후 각각 월 300만원 씩 급여와 차량·기사가 제공된다. 그러나 연장은 되지 않는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전국협동조합 노동조합과 전국한우협회에서는 즉각 성명을 내고 ‘농협 적폐청산’과 ‘대개혁’의 필요성을 들고 나왔다. ‘농가 소득 5000만원 실현’의 허구성부터, “농협이 조직 이익의 틀에서 벗어나 농민 이익 우선기관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당초 중앙회장의 취임 일성이 말의 성찬이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까지 성명을 발표하면서 전회장의 지원금 환수, 퇴임 공로금 폐기는 물론 차제에 겸직 규정과 이중 급여제도까지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김병원 회장은 취임 이후 ‘협동조합 이념’을 입에 달고 지냈다. 잠들어 있는 직원들의 의식을 깨우겠다며 반강제적(?)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계열사 임직원들과의 대화에서도 농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라고 강조했다.

경제 침체와 소비 냉각 그리고 수입 축산물과의 힘겨운 경쟁, 청탁금지법 등으로 고달픈 축산농민들의 고충에 동참한다는 이유로 사료 가격도 할인했다(다시금 환원하기는 했지만). 그런데 최근 경제지주로 이관된 이후 전 사업장의 목표 달성이 부진하자 기획실은 농협사료에게 ‘D등급’을 찍어 경고장을 날렸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다.

 

외부시각에선 황당

 

직원들은 어리둥절하지만 밖에서 보는 시각은 황당하다. 중앙회장은 농가들 앞에서 달콤한 말을 날리고, 실무진의 행태는 정반대이면 직원들에게 회장의 말은 선심성으로만 들릴 뿐이다. 쉽게 말해 “넌 순진하게 그 말을 믿냐?”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혁신’은 물 건너간 상태다.

예우란 내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존경이란 내가 강제하는 것도 아니고, 자리가 만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도 양상군자(梁上君子) 같은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어서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사실 하나만 인지하고 있어도 욕은 먹지 않는다. 그 ‘인지’는 권한을 위임받았기에 그에 대한 의무감이 얼마나 큰 줄 알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금의 행태를 보면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나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선다. 이 모든 것들이 협동조합의 주인이 없어서일까? 그래서 ‘대한민국 농업의 재건’이라는 허울을 내걸고 제 잇속만 챙기려드는 것일까? 그 오랫동안 이 거대한 조직이 망하지 않고 굴러가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농협에서 정년을 다 채우고 떠난 전직 임원은 그에 대한 답으로 이렇게 말한다. “농협의 조직은 ‘항아리’ 형태이기에 임원들이 아무리 분탕질을 쳐도 버틸 수 있는 곳이다. 중간 3·4급 직원들의 노력이 토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단지 몇 년간을 지배(?)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임원들이 저질러 놓은 일들을 치울 수 있다”고.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권한을 휘두르는 동안, 직원들의 열정은 그 이상으로 식는다. 그동안 누군가는 “도대체 내가 협동조합에서 뭔 일을 하는가?”하는 자긍심의 상처를 받고, 또 누군가는 승진을 기다리며 자신도 그 자리에서 누릴 권한을 꿈꾼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은 직원의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농협 생각하면 눈물’

 

이번 ‘셀프 전관예우’ 규정은, 김병원 회장이 누구보다 강하게 협동조합 이념을 강조해 왔기 때문에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가뭄과 폭우피해 그리고 악성가축질병 방역 현장을 내달리며 독려해온 그의 행보에, 처음엔 마지못해 나중엔 협동조합맨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알았던 직원들은 ‘어안이 벙벙’이다.

이쯤 되면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임원들의 협동조합 이념과 직원들의 협동조합 이념은 다른 것인가?” “임원들은 임기 동안의 노력을 미리 산정해서 임기 만료 후의 처우까지 미리 만들어놔야 마음 놓고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가?”

직원들은 전체 조직에 해를 입히면 반드시 그에 맞는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임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농민들과 오랜 동안 현장에서 고락을 함께해온 농협의 원로들은 “농협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한다. 그 말의 의미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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