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인용을 당하자 일부에서는 비로소 한국 사회가 ‘박정희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했다. ‘군부 독재자’ 또는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아버지’로 극과 극의 평가를 받으며, 1979년 10월 암살된 이후에도 경제와 사회 등 대한민국 모든 분야에서 그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의 딸에 의해 명실상부 박정희의 그림자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이 끝난 지 8년이 지난 1961년 한국의 연간 1인당 소득은 82달러였다. 그 전쟁으로 제조업 시설의 절반과 철도의 75%이상이 파괴되는 손실을 입었다. 식민통치 후유증으로 1945년만 해도 78%에 달하던 문맹률을, 대한민국 국민은 1961년까지 29%로 끌어내리는 교육열을 보였지만 이 사실을 제외하곤 별다른 실적도 없었다.

 

1인당 소득 14배나

 

오히려 1950년대 당시 미국 정부의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는, 한국에 대한 원조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 대통령은 1981년까지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하겠다고 공표했다. 경제계획을 세우고 계획경제를 앞세워 밀어붙인 결과 1972년 319달러, 1979년에는 1647달러로,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다.

1980년대 초반 한국이 암울한 정치적 좌절에도,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에 맞먹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중진국 대열에 낄 수 있게 된 것도 이러한 결과가 토대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저서에서 “내가 태어난 1963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의 1인당 소득은 구매력의 관점에서 볼 때 약 14배 증가했는 데, 이와 똑같은 결과를 달성하는 데 영국은 2세기, 미국은 1.5세기 걸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눈부신 발전상에는 인권 유린으로 인한 수많은 피해자와 현대 중국을 비롯한 방글라데시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임금 착취에 희생된 노동자와 농민들의 눈물이 있었다. 브라질의 많은 도시들에 세워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빈민촌들이 형성됐고, 중산층의 새로운 아파트 단지를 마련하기 위해 강제로 철거돼, 안전과 위생으로부터 더 멀어진 빈약한 외딴 동네로 쫓겨나야 했다.

 

아픔을 달래 줬으면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아버지가 추구해 왔던 ‘한강의 기적’을 매조지하는 길은,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착취당하고, 희생됐던 이들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일이었다. 그들의 눈물만이라도 어루만져주었다면, 아버지의 과(過)도 그의 공(功)에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뿐만 아니라 국민의 불행이었다.

이제 내달 9일이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된다. 이명박 정권은 ‘경제를 살려 달라’는 국민의 요구에 ‘747(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불, 세계경제 7위)’로 답하며 대통령이 됐지만, 부자들만의 정책을 펴면서 농민과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순리(順理)대로’라는 말이 있다. 기초과학의 토대가 단단히 쌓이지 않으면 모든 과학적 발전이 사상누각이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시기에 그것을 겪지 못하면 후에 반드시 더 큰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시장의 자율성을 간과한 고속의 성장은, 당장은 물질적 성과를 거두겠지만 그것은 삶의 풍요로움을 주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물질만능주의나 천박한 자본주의에 물든 작금의 현실은 가파른 성장의 후유증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주역들은 지금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2015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46.9%로 2명 중 1명이 빈곤한 상태다. 그로인한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58.6명으로, 전체 자살률 26.5%의 2배가 넘는 수치다. 그들의 후손들, 15~24세의 청년층 실업률은 10.7%에 달하며, 계약직 노동자의 수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행복지수 좀 높이길

 

어찌 이들 뿐이랴. 초등학생의 경우는 또 어떤가? 일주일에 두세 번 학원 근처에서 혼자 밥을 사먹고,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하루 단 48분에 그치며, 성적 때문에 자살 충동을 느낀다. OECD 청소년 행복지수 꼴찌가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삶의 기준을 ‘돈’으로 평가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직업군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펼치는 정부는, 이제 더 이상의 정부가 아니기에 이번 대통령은 국민이 스스로 자긍심을 주는 사람이길 바란다.

“한국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딜레마를 압축해 보여주는 곳이다.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모두 겪었지만 짧은 기간 내 선진경제 국가로 발돋움했다. 게다가 정보기술과 바이오기술 분야의 혁명을 선도 중이다. 덕분에 유망함과 더불어 위험도 두 배로 증가했다. 생활수준이 향상되는 동안 자살률도 치솟았다. 행복도는 개도국이나 빈민국보다 낮다.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에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교수의 한국에 대한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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