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RPC(미곡종합처리장) 문제로 일본 군마(軍馬)현을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 젠노(全農)의 한 관계자는 일본의 가정이 핵분열로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데다, 식생활의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쌀 과잉 생산이 시급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일본 정부는 30% 쌀 생산 감축 운동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1인 가구에 맞춰 쌀의 소포장도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마트를 방문한 결과 1리터, 500밀리리터 종이팩에 쌀이 들어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처음엔 우유팩으로 알았다가 쌀인 줄 알고는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쌀은 우리에게 특별

 

그 후 5년이 좀 더 지났을까? 국내에서도 그와 비슷한 소포장 쌀이 시중에 팔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쌀 과잉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하면서도 일본 정부와 같이 생산 감축운동은 활발히 진행되지 않았다.

쌀은 우리에게 특별하다. ‘밥심으로 산다’는 말은 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없던 시절 ‘보리 고개’를 넘고, ‘흰 쌀밥에 고깃국’을 그리워했던 시절이 아주 먼 과거도 아니다.

1인분·2인분 버튼을 누르면 나오던 쌀통에서 쌀을 바닥에 흘렸다가 치우지 않아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던 기억도 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어떻게 하던지 흰 쌀밥을 먹이겠다고, 배고픔을 해결하겠다고 ‘통일벼’를 만들고 온갖 정성을 들였다. 그 덕분에 겨우 배고픔에서 해방됐다.

우리에게 있어서 쌀농사는 국가의 근본이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그렇게 형성됐다. 이런 탓에 농업의 경제적, 정치적 입김은 강했다. 어떤 논쟁에도 우위에 섰다.

그러나 시대가 급격하게 변했다. 현대 직장인들은 집에서 하루에 한 끼의 식사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입맛도 변했다. 햄버거나 분식 등 패스트 푸드에 길들여진지 오래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70년대 약 136.4kg에서 2015년 62.9kg으로 절반 이상이 줄었다. 지난해 풍작으로 쌀 420만톤이 생산됐다. 창고에 보관된 쌀만 135만톤에 지난해 생산량 중 이월될 재고량 약 35만톤을 합치면 전체 재고쌀은 적정량의 2배 이상인 170만톤에 이른다.

 

보관 비용만 1000억

 

쌀은 이제 흔한 상품이 됐고, 그만큼 인기도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쌀을 신성시하는 우리의 의식은, 농업인의 소득 안정을 명목으로 각종 형태의 보조금 지급을 허용하고 있다. 변동직불금은 2016년 전년대비 4배 가까이 늘어났다. 현재 정부가 보유한 쌀 재고량은 135만톤으로 적정량의 2배에 달한다. 사들인 쌀을 보관하는 데 들어가는 돈만 해도 연간 1000억원이다.

국내 생산된 쌀이 훨씬 많아도 정부는 해외에서 쌀을 수입한다. 소비는 꾸준히 주는데 쌀농사는 흉·풍년에 상관없이 구조적으로 쌀이 과잉 생산되고 있는 구조다. 의무수입물량(최소시장접근, MMA)으로 연간 40만톤 정도를 수입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책이란 것은 보조금이다. 과잉생산을 해도 정부가 이를 사주므로 농민 입장에선 쌀 가격 하락에서 오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일부 농민들이 채산성이 높은 여타 작물보다 벼농사를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남아도는 쌀 24만톤을 가축사료로 쓰겠다고 하자 난리가 났다. 그 귀한 쌀을 어떻게 가축에게 먹이느냐는 것이다. 쌀 과잉 문제를 지적하던 언론들도 ‘비아냥거리는’ 제목을 달았다. 쌀에 대한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가축에 먹일 양이면 차라리 남아도는 쌀을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고 한다. 틀린 지적은 아니다. 그러나 남아도는 쌀에 대한 대책을 풀기 위해서는 한 방향만으로는 결코 풀 수 없다.

축산농가의 입장에서는 쌀 과잉 문제를 축산업과 함께 풀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지적해 왔다. 쌀을 과잉생산해서 문제를 푸는 것은 하책(下策) 중의 하책이라는 것이다. 농지를 활용해 부족한 조사료를 확보하는 것이 농·축산업 전체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도, 농업과 축산 전체를 다루는 농축산부는 고심한 흔적이 없다.

 

수입사료 대체 효과

 

연초부터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쌀 문제를 중점사업의 하나로 삼았다. 생산조절과 소비 촉진 두 가지로 풀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벼를 대체할 수 있는 작물을 개발함으로써 생산을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벼를 심은 뒤 벼알이 막 생길 무렵 미리 수확해 사료용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올해부터 시범적으로 시작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식량용 쌀 생산이 줄어들면서, 수입 사료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김태환 농협경제지주 축산경제대표는 이에 대해 설명한다. “총체벼를 심어서 논의 형상은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쌀 생산 감축과 수입조사료 대체 등 이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당진낙협과 이미 총체벼 사양시험에 들어갔고, 젖소와 한우의 경우 기호성, 영양분, 유량 모두 향상됐다고 덧붙였다. 강원도와도 벼 대체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쌀의 과잉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고정된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어느 것이 중요한지 심각하게 제발 고민 좀 하라고 당부하고 싶은 건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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