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변 대비 ‘국가곡물조달시스템’ 재정비를

 
 

2016년을 마무리하고 2017년을 맞이하면서 국정농단 사건으로 어수선해진 시국에 역대 최악의 고병원성 AI가 전국을 휩쓸면서 살처분 된 가금류가 2600만 마리를 넘어섰다. 가금 산업 및 관련 전후방 산업의 피해 액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계란 값 폭등에다 식품 가격마저 줄줄이 상승하는 등 악재 속에 새해를 맞이했다. 대외적으로는 국제 유가가 상승하고 달러화 강세가 유지되는 가운데 원자재 가격 상승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 또한 바닥권에서 횡보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 유지작물 가격 급등으로 상승 조짐을 보였다.

최근 몇 해 동안 국제 곡물 시장은 안정적인 수급 체계를 갖춤에 따라 곡물 가격은 하락에 하락을 거듭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하지만 곡물 가격의 상승 요소는 항시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에도 낙관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많이 부각될 것으로 본다. 일례로 엘리뇨 현상에 따른 곡물 파동 우려가 계속해서 곡물 시장에 영향을 줬다. 최근에는 라니냐 현상 발생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곡물 가격을 끌어올린 바 있다. 다행히 기상 이변에 따른 피해 우려는 기우에 그쳤으며 16/17년 주요 국가의 곡물 생산량은 작년보다 더 늘어나 대풍작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역사적인 흐름을 살펴보았을 때 곡물 파동의 위기는 2007년 이후 빈번하게 발생했다. 3~4년을 주기로 전 세계가 극심한 가뭄을 겪음에 따라 곡물 생산량 급감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세계 금융 위기와 2012년 미국 내 극심한 가뭄에 따른 주요 곡물 생산량 급감으로 곡물 가격은 사상 최고치로 솟구쳤다. 그 외 러시아의 곡물 생산 부진과 내수 시장의 수급 불균형에 따른 수출 제한 조치로 곡물 가격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 바 있다.

2013년 이후 국제 곡물 시장은 안정을 되찾으며 수급 불균형이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곡물 가격은 하향 안정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경우와 같이 예상치 못한 기후 변화로 세계 곡물 생산 급감에 따른 곡물 가격 폭등 우려는 떨쳐버릴 수 없다. 기상 이변에 따른 곡물 수급 불균형 문제가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식량안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다.

일본은 수십 년 전부터 전농과 종합상사들이 주요 곡물 생산국에 진출해 산지에서부터 수출에 이르기까지 전체 유통망을 확보함으로써 비상시에는 식량 물자 조달을 위한 창구로서, 평상시에는 국제 곡물 무역을 통한 이익 실현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편 중국의 경우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소득 향상에 따른 식습관의 서구화 등으로 식용 및 사료용으로 많은 곡물을 소비하고 있다. 따라서 안정적인 곡물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임을 감안해 식량 증산을 위한 농업기술 개발 이외에 해외농업 투자와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국제 곡물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국제 곡물 시장 진입을 위해 오랫동안 많은 비용을 투자했으나, 중국은 막대한 자금으로 M&A 시장에서 세계적인 농산물 기업들을 사들여 빠른 시간 내에 국제 곡물 시장에 진입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의 국유기업인 중량그룹(COFCO)이 세계적인 곡물 회사인 노블과 니데라를 전적으로 인수한 바 있다. 또 중국화공(ChemChina)이 세계적인 종묘 회사인 신젠타를 인수했다. 따라서 중국은 전 세계를 통해 종자 개발에서 곡물 생산 및 유통과 수출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에 걸쳐 곡물 사업에 손을 대고 있으며 세계적인 곡물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변국들은 앞 다퉈 자국의 식량 안보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음에 반해 우리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의 식량 안보를 위한 정책이나 방향성마저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못하다. 2000년대 중후반 곡물가격 급등에 따라 식량 안보를 위한 일환으로 2011년부터 추진되어 온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 사업은 미비한 계획과 준비 부족으로 실패했다. 그밖에 해외농업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안정적인 곡물 확보를 위한 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곡물 수급 안정 방안

우리의 경우 국제 곡물 파동으로 전 세계가 곡물 공급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경우 고곡가의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곡물 수급 안정기에 미래의 위험을 대비하는 작업이 절실하기 때문에 문제점과 함께 해결 방안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첫째, 수차례 곡물 파동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국가의 뚜렷한 식량안보 정책 수립이 결여되어 있어 국가 차원에서 현실적이고도 실천 가능한 정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정책 수립에는 학계나 연구원 중심이 아닌 실무자 중심으로 T/F팀을 구성해 해외 사례 연구와 실무 중심의 조사를 통해 올바른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둘째, 국제 곡물 시장에서 곡물을 원활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곡물 무역 회사를 집중적으로 키워야 한다. 과거에는 종합상사들이 곡물 사업을 추진하였으나 해외 공급업체의 대리점 역할에 그쳐 큰 성과 없이 사업을 접은 바 있다. 곡물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장기간 막대한 비용이 지출돼야 하므로 선뜻 나서는 기업이 없다.

2010년대 초반에 국내 한 선사가 미국 북서부 수출 엘리베이터(곡물저장시설)에 공동 투자하며 상당량의 곡물을 국내에 도입한 바 있으나, 해운 경기 침체로 기업회생 절차를 거치면서 사업권을 잃어버린 점이 안타깝다.

현재 극소수의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해 곡물 사업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으며 비록 자체적인 수출 엘리베이터 하나 마련해 놓고 있지 않으나 현지 유통망을 구축해 국제 곡물 시장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어 찬사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국제적인 기준에서는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기에 보다 적극적인 사업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곡물 사업은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장치 사업이므로 곡물 사업에 대한 초기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민간기업 간 또는 민간기업과 국영기업 간의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또 기업들의 곡물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셋째, 국제 곡물 분야의 전문 인력 확보 및 양성을 위한 교육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국제 곡물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곡물 수입 비중이 상당히 큼에도 불구하고 곡물 무역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들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곡물 수출입에 종사하는 일부 담당자를 제외하고는 국제 곡물 무역에 대한 관심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국제 곡물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전문 교육기관의 설립을 통해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넷째, 국제화 및 정보화 시대 속에서 우리의 국제 곡물 시장에 대한 이해도는 선진국에 대비해 상당히 낮다.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정보의 취득 및 활용은 사업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자 도구이다. 일부 기관이나 기업에서는 국제적인 통신사를 통해 정보를 받고 있으나 비용적인 부담이 상당히 클 뿐만 아니라 방대한 자료와 전문적인 지식 결여로 활용성이 떨어지고 있다.

그 외 국내 선물회사들이 상품 시황 리포트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나 일반적인 정보에 그쳐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국제 곡물 시장을 분석하고 다양한 정보를 시기적절하게 제공해 줄 수 있는 기업을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거나 지원 사업을 통해 많은 정보 분석 기업들을 두어야 한다.

지면 부족으로 더 자세한 내용을 다루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주요한 사항은 언급되었다고 본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살아 갈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 식량안보를 구축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정유년 새해에는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화목이 충만하길 바라며 국제 곡물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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