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정상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2013년 취임 일성이다. 참 그럴 듯한 문장이다. 하지만 2016년 11월 현재 박 대통령의 연설문 곳곳에 쓰인 ‘비정상’이라는 말은 ‘최순실’이라는 강남 아줌마가 즐겨 쓰는 말임이 확인됐고, ‘창조경제’ 역시 ‘차은택’의 머리에서 나온 말임이 짐작된다.

모든 것을 그녀에게 묻고 듣고 행해온 사실이 하나 둘 씩 밝혀지고 있는 시점에서 어느 것 하나 대통령의 소신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박 대통령 스스로 비정상적인 사고와 국정 운영을 해 왔음으로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과정을 우리는 줄곧 보아왔다.

 

축산인들은 믿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일산에 모인 수천 명의 축산인들에게 “내가 직접 축산 문제들을 챙기겠다”고 많은 축산인들 앞에서 공언했다. 축산인들은 믿었다. 그리고 그의 국정에서 농업을 비롯 축산업이 반대로 소외되는 것을 지켜봤다. 약속을 지키라고, 그날의 약속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축산인들은 호소의 대상을 잘못 잡았다. 청와대가 아니라 최순실의 사무실을 찾았어야 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사과를 ‘녹화’로 짧게, 그리고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이었기에 조언을 구했다”는 별 일 아니었다는 식의 발표를 했다. 이미 이전 청와대 문건 파동으로 ‘국기 문란’의 예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행위는 별 것 아니란다. 우리들은 분노했다.

이원종 전 비서실장은 26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국민들에게 많은 아픔도 주셨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를 입은 마음 아픈 분이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도 자신도 연설문을 쓸 때는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구한다고 했다. 우리들 개·돼지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전국의 대학교수와 학생들의 시국 선언이 이어졌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이 본격 추진되던 지난해 하반기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 재직했던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가 차은택 씨의 외삼촌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수능이 몇 일 남지 않았음에도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도 광화문에 모였다. “당신의 무능과 기만에 경악을 금치 못해 뛰쳐나왔다”며 ‘대통령 탄핵’과 ‘하야’의 푯말을 들었다.

 

좌절과 분노와 한탄

 

식민통치를 당한 나라 대부분은 독립 이후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내전과 경제적 식민지화되면서 헐벗고 수탈당하는 몸살을 앓아 오고 있다. 제3국가들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며 세계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한 것을 모델로 삼아 경제발전을 이루려는 노력들이 한창이다. 그 부러움의 대한민국이 지금, 우리들의 자부심은 꺾어지고 분노와 좌절 그리고 한탄과 울분이 가득 찼다. 박 대통령은 국민들 생각에 밤잠을 못 잔다고 자주 말해 왔지만, 우리들은 붉어진 눈시울로 뜬눈으로 밤을 지샌다. 잠시 잠들었다가도 가위에 눌린 듯 깬다. 그리고 한숨이다.

박 대통령인지 최순실인지의 혜택으로 고위 공직에 올랐던 ‘자격 미달자’들이, 이제는 그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침묵하거나 부인하는 모양새다. 당장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aT(한국농수산식품공사) 사장 시절 추진했던 한식 세계화 사업 일명 ‘에콜페랑디’사업을 미르재단에 사실상 ‘상납’함으로써 그 댓가로 장관에 올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물론 농림축산식품부는 “‘한식재단으로의 일원화’ 차원에서 중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국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국정 중단’ 우려의 비상등이 잇따라 깜빡거린다. 식자층과 원로정치가들을 중심으로 퍼져간다. “서둘러 봉합해야 한다”고 일부 언론방송매체가 확대시킨다. 또 ‘빨리 빨리의 조급증’이 나타난다. 튀긴 구정물을 서둘러 지우려 한다지만 세탁기나 손빨래를 하지 않고선 겉만 말끔할 뿐 더러움은 내내 남아 있게 된다.

수백의 피지도 못한 어린 생명들이 수장되면서 그들은 우리에게 경고했다.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국가의 위기관리능력이 무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또 경험했다. 최근 2년 동안 해마다 큰 사건을 겪었지만 우리는 덮기에 급급했다. “기억하기 싫다”고, “경제가 우선이다”는 핑계로 외면했다.

 

역사의 한 순간일 뿐

 

“경제를 살려 달라”며 뽑은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온전한 강이 파헤쳐지고, 수십 조 원의 혈세가 낭비되고 그 후유증으로 온 국토가 황폐해지고 국고는 줄고 덕분에 빈부 격차의 골이 극심해졌지만 우린 어떻게 손도 써보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던 이들의 대부분은 “그는 원칙을 지킬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린 또 속았다. 그의 원칙이 우리가 생각하는 원칙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에 지금 우리는 너무 아프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지 못한 권력은 반민주요, 독제요, 왕정이다. 파내야 하는 ‘고름’이다. 당장의 국정 중단은 우리가 살아갈 역사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조상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 지와 관계없이,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가 정말 온전히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역사의 한 순간에서 당분간의 국정 중단이 뭔 대수란 말인가? 또 다시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으란 말인가?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